지원사업

무슨 고민인가요

저자 :
한민경
대담 기자 :
한윤정 경향신문 문화부장
대담 날짜 :
2014.11.20
조회수 :
123,840
첨부파일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정확한 질문입니다”

 

<무슨 고민인가요>(스윙밴드)의 저자 한민경씨

 

한윤정 경향신문 문화부장

 

1.

 저자의 이력이 굉장히 특이하다.

 ‘댄스클럽 DJ, 화장품 방판사원, 영어 강사, 패밀리레스토랑 서버, 대기업 외식사업부 고객상담실장, 나이트클럽 오픈, 통증클리닉 기획 및 오픈, 병원 환자 상담, 컬러테라피스트, 국민TV 라디오 상담, WPI 연구원 등 갖은 직종을 섭렵했으나 종목은 언제나 상담, 결국 고민수집가로 안착했다. ‘연희동 한선생’이라는 닉네임으로 수비학과 타로 강의를 하고 있는 무면허 타로마스터.’

 부쩍 구미가 당겨 책을 들춰 보았다. ‘타로마스터 한민경의 필살 상담기’란 부제가 붙은 책 <무슨 고민인가요>(스윙밴드, 2014년 11월 출간)는 타로의 맛을 보여주는 개론서인 동시에, 그동안 무수한 상담에서 쌓은 저자의 지혜가 녹아 있는 책이다. 여기에는 한 해의 운세를 알아보는데 활용하는 타로 연도카드(year number) 22개의 점괘와 함께 전형적인 상담사례가 차례로 소개돼 있다. 0번 바보에서 시작된 연도카드는 1번 연금술사, 2번 여사제, 3번 여왕, 4번 황제, 5번 교황, 6번 연인들, 7번 전차, 8번 힘, 9번 은둔자, 10번 운명의 수레바퀴, 11번 정의의 여신, 12번 매달린 남자, 13번 죽음, 14번 절제, 15번 악마, 16번 탑, 17번 별, 18번 달, 19번 태양, 20번 심판, 21번 월드 순으로 이어진다. 맨 처음 등장한 바보(우리 자신)가 진정한 자아를 찾고 행복의 비밀을 풀기 위해 순례를 떠난 여정에서 차례로 만나는 인물 혹은 상징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뭐가 뭔지 헷갈릴 것이다. 연도카드를 이용해 자신의 신년 운세를 보는 방법은 이렇다. 생일이 9월 8일이면 0, 9, 0, 8에다 새해 숫자인 2, 0, 1, 5를 더한다. 25가 나오는데 연도카드는 21까지밖에 없다. 그러면 25를 다시 쪼개 2, 5를 더하면 7이 나오고, 이것이 9월 8일생의 2015년 운세다. 7번은 전차다. 전차는 승리와 행진, ‘스타트 업’의 상징이다. 따라서 새해에 전차 카드가 들어오면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할 때, 재능과 적성을 따라 이직을 하거나 이사를 하게 될 운이다.

 

많은 사람들 바꿀 수 없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 낭비

 

 이 책은 사실 타로를 전부 이해하기에는 미진하다. 당장 ‘같은 생일에 태어난 사람들은 새해 운세가 다 똑같다는 말이냐’는 질문이 튀어나온다. 78장의 타로카드 가운데 자신의 고민을 생각하면서 한 장 혹은 여러 장의 카드를 뽑으면 타로마스터가 카드의 이미지를 읽어 점괘를 알려주는 일반적인 방법과도 다르다. 

 저자를 만나기로 한 건 그녀의 특이한 이력이나 이국문화인 타로에 대한 호기심만은 아니었다. 책의 곳곳에서 내공의 냄새가 풍겼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본다는 느낌과 함께, 쉽게 말하는 것 같지만 많은 경험과 성찰이 배어 있었다. 가령 이런 구절이다. ‘우리에겐 인생의 매 시기마다 전력을 다해 고민해야 할 문제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진짜 고민해야 할 질문은 방치한 채, 바뀌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는 것들에 매달려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시급한 것은 내가 얻고자 하는 답이 아니라,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질문을 찾는 것이다.’

 

2.

 ‘연희동 한선생’의 살림집 겸 상담실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러가 슈퍼 인근 주택가에 있다. 책에 따르면 연말은 여름휴가철과 더불어 한참 상담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바쁜 시기다. 대문에서 2층으로 바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었다. 

 타로마스터 한민경씨는 1970년생, 만 44세의 싱글 여성이다. 자그만 체구에 부드러운 인상과 목소리를 가졌고 잘 웃는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집안에는 그녀가 키우는 6마리의 유기묘들이 여기저기 길게 누워 있다. 원래 광화문 오피스텔에 살던 한씨는 불쌍한 길양이들을 한 마리 두 마리씩 거두다가 점점 늘어나자 도저히 감당이 안 돼 좀 더 넓은 주택으로 이사 왔다. 하루에 세 명 정도 찾아오는 상담 고객들이 고양이털 때문에 불편하지 않도록 수시로 청소를 해야 한다. 커피를 내린 뒤 그녀의 상담실에 마주 앉았다.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상담을 하셨어요?

 “돈 받고 하기 시작한 건 20년쯤 된 것 같아요.” -그러면 돈 안 받고 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초등학교 2학년 때요.”

 이 방면의 영재임에 틀림없다. 사연은 이렇다. 한씨의 언니는 그때 벌써 고등학생이었다. 언니가 구독하던 여학생 대상의 월간지를 즐겨 봤는데 연말 부록으로 타로점 치는 방법이 실려 있었다. 꼼꼼히 읽은 뒤 언니를 대상으로 상담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감탄한 언니가 자기 친구들을 줄줄이 데려왔고 ‘쪽집게’란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재능은 중고등학교를 거쳐 신학대학에 다니던 시절까지 줄곧 발휘됐다.  

 본격적으로 상담을 시작한 건 대학을 중퇴하면서부터다. 3대째 기독교 모태신앙을 가진 한씨 집안의 여자들은 모두 신학대학을 나왔다. 그런데 그 무렵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2년 장학금이 끊기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그때부터 파란만장한 직장생활이 시작됐다. 아울러 상담을 위한 공부도 병행했다. 지금은 타로로 수렴됐지만 그동안 공부한 과목은 주역, 관상, 풍수, 사상체질, 애니어그램, MBTI, 오라소마(컬러테라피), NLP트레이너, WPI(퍼스낼러티유형검사) 전문가 과정, 코칭프로그램, CS(커뮤니케이션서비스) 전문가과정, 세븐 해빗 자격증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사장님이 점을 이용한 이벤트를 만들었어요. 맥주 몇 병에 고민상담, 이런 식이었죠. 인기를 끌면서 압구정동으로 스카우트 됐어요. 칵테일 시키는 연인들의 애정운을 봐 주었죠. 화장품 방문판매를 할 때는 친구와 둘이 다녔는데 제가 사무실에 들어가 ‘어머 언니, 최근에 남자친구랑 헤어졌구나’라고 접근하면 ‘어떻게 알았어요’하면서 몰려와요. 상담해주고 화장품을 무지 많이 팔았어요. 둘이 한 건물을 다 턴 적도 있다니까요.”

 그녀의 재능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쪽으로 발휘됐다. 기독교 계통 의류회사에 다닐 때는 성경이나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인물의 일화를 타로에 접합해 동료들의 점을 봐주었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 걸 이 때 깨달았다. 패밀리레스토랑 업체의 고객상담센터장으로 취업해 불만사항을 전화로 처리하기도 했다. 너무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라서 보통 사람은 6개월을 못 넘기는데 그곳에서 4년을 일했다. 그 사이에 알음알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었다. 상담료가 월급을 웃돌기 시작하면서 10년 전인 30대 중반부터 전업 상담가로 나섰다.

 

유형화된 사람 많이 보면서 순간적인 통찰력 생겨

 

 -계속 상담이라고 하시는데 점과 어떻게 다른가요?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아는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어떤 선택이 유리한 지도 알게 되죠. 소위 점쟁이들이 미래를 맞추는 경우가 있어요. 이것은 유형화된 사람들을 많이 보면서 어떤 순간적인 통찰력이 생기는 거예요. 그 사람을 딱 봤을 때 과거의 데이터들이 집적되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야기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무슨 고민인가요>에는 소개돼 있지 않지만 사람은 9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연도카드 1번 연금술사부터 9번 은둔자까지가 사람의 유형, 즉 소울 넘버(soul number)에 해당한다. 방법은 연도카드의 숫자를 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신의 생년월일을 모두 더한다. 1952년 2월 2일 생이라면 1, 9, 5, 2, 0, 2, 0, 2를 더한다. 21이 나온다. 다시 2, 1을 더한다. 3번 여왕이 나온다. 여왕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만큼 지지자들에게 신뢰를 준다. 그러나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좀처럼 자신의 성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아 소통이 어렵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스티브 잡스, 안철수는 1번 연금술사 유형이다. 이런 사람들은 창의성이 있고 자기과시에 능하다. 

 내년에 나올 두 번째 책에서는 이같은 9가지 소울 넘버를 소개할 예정이다. 한씨는 연도 넘버, 소울 넘버 외에 시대를 뜻하는 에라 넘버(era number), 무의식을 탐구하는 이너 넘버(inner number)까지 네 종류의 숫자를 활용해 타로 상담을 한다. 타로에다 수비학(數秘學, 수를 사용해서 사물의 본성, 특히 인물의 성격ㆍ운명이나 미래의 일을 해명ㆍ예견하는 서양 고래의 점술)의 원리를 적용해 직접 개발한 방식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아는 거죠. 그래야 쓸데없는 고민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게 되면 그 일을 정말 잘 할 수 있습니다.”

 

3.

 그의 재능은 말을 굉장히 잘한다는 것이다. 3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지루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말을 잘 하는 건 결코 배워서 되는 게 아니다”라는 자랑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말솜씨로 내담자를 치유해준다. 10년, 15년씩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웬만큼 알면 스스로 자기분석을 할 수 있지 않나요.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은 게 사람이죠. 궁금증이 계속 생기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하면서 공부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말해도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모든 걸 남의 탓만 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용한 점괘도 소용이 없죠.”  

 세상에서 가장 고민이 많은 사람은 외부에 닫혀 있고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이다. ‘답정남 답정녀’, 즉 답이 정해져 있는 남녀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다른 사람, 환경 탓만 하기 때문에 늘 불행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삶’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싫고 다름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싫다”는 사람이 가장 문제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렇듯 인생을 훤히 들여다보는 한씨 자신의 삶은 어땠을까. ‘시험에 떨어지고, 취직도 못하고, 결혼식 일주일 전에 파혼하고,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회사에서 쫓겨나고, 내기하다 빚지고, 투자금 홀라당 날려먹고 쇠고랑 찰 뻔하고, 엄마에게 십자가로 두드려 맞는’ 게 자신의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인생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는 걸 발견

 

 “집이 가난해서 분식점조차 마음대로 못 갔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고민하면서 제 스스로 치유되는 걸 느꼈어요. 과거의 경험이 모두 상담을 하는데 도움이 되더군요. 인생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는 걸 발견한 게 이 일의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소울 넘버는 2번 여사제다. 여사제는 캄캄한 밤길을 비춰주는 달의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태양처럼 밝지도 못하고 별처럼 작아도 스스로 빛을 내지도 못하는 신세를 한탄한다. 그러나 바보가 떠나는 순례길에서 캄캄한 밤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달이다. 고민에 빠져 방황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지금의 ‘연희동 한선생’ 역할을 하게 된 것도 여사제로서의 운명 때문인지 모른다. 

 그녀는 잘 나가는 타로마스터로 머물 수도 있었다. 재벌그룹 총수나 정치인들이 아래 사람을 보내온다. 수험생 엄마들 사이에서는 ‘족집게 대학 진로 어드바이저’로 통한다. 한때 연예인들이나 강남 룸살롱에서 잘 나가는 ‘텐프로’의 연애 및 결혼 상담으로도 이름깨나 날렸다. 수입 면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비밀을 지켜주는 게 훨씬 낫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도 ‘더불어 삶’의 정신이 중요하다. 일 대 일 상담이 아니라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졌다. 대학로 벙커원에서 타로 강의를 했고 팟 캐스트인 국민TV에서는 황상민 연세대 교수와 심리 대 점이라는 배틀 형식의 방송을 하다가 상담코너를 따로 운영하기도 했다. 책을 낸 것도 고민과 운세라는 것을 쉽게 이야기로 풀어내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이런 것 역시 운때가 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책을 내라고 권했다. 연재를 해보라, 강의를 해보라는 제안도 많았다. 실제 출판사 편집자들이 많이 다녀갔다. 그렇지만 자신은 2번 여사제, 달처럼 은인자중 암중모색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7번 전차형의 편집자를 만났다. 올해 초에 만나서 책을 내자며 정신없이 다그치더니 연내에 책이 나왔다. “편집자가 7번이라서 올라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한씨를 인터뷰하러 간 것도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중과 통하는 채널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그녀의 사연을 “채널 운영자”들이 주로 보는 관훈클럽 홈페이지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소개하게 된 건 모종의 힘에 이끌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는 기자 고객도 많이 만났다.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어느 부서에 갈 것 같냐”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볼 때 우리 사회 엘리트나 전문직 종사자들의 문제점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다. 삶의 에너지인 욕망을 경시하고 함부로 다루는 바람에 그 에너지가 어느 순간 괴물로 변해서 어떻게 발현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이중생활, 바바리 맨, 성희롱 등 온갖 구설수에 시달리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떠올랐다.

 한씨는 사람을 달리는 마차에 비유한다. 마차는 물리적인 몸, 말은 삶을 움직이는 욕망, 마부는 욕망을 조절하는 이성, 마차에 탄 손님은 소명 혹은 인생의 방향이다. 사람들은 흔히 마부가 말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훌륭한 마부는 말을 통제하기보다 말의 감정을 이해하고 거기에 호흡을 맞추는 사람이다. 즉 자신의 욕망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이성으로 잘 이끌 때 원하는 인생의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부에게 지나친 권한을 부여하거나 심지어 마부와 말을 구분하지도 못한다.  

 “자신의 욕망이 저지른 결과를 받아들이면 욕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말들이 난리를 치는구나 느끼는 거죠. 사람들은 대개 욕망을 해소하려고 하는데 욕망은 해소하는 게 아니라 충족시켜서 그것이 가려고 하는 방향을 보는 게 중요합니다. 욕망이 채워졌을 때 내는 시너지가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거든요.” 

 ‘욕망을 바로 보고 그것을 채움으로써 인생의 진정한 에너지를 얻어라.’ ‘연희동 한선생’이 고민남 고민녀에게 주는 궁극의 조언이었다.

 

■ 이메일 주소

- 한윤정 경향신문 문화부장 : yjh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