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사업

팝, 경제를 노래하다

저자 :
임진모
대담 기자 :
예진수 문화일보 논설위원
대담 날짜 :
2015.07.03
조회수 :
4,264
첨부파일



팝과 경제, 철학으로 소통하다

 

음악평론가 임진모(56)가 쓴 책을 읽다가 레코드 바늘처럼 예리한 문장에 낚일 때가 있다. ‘밥 딜런은 포크송을 통해 자신 있게 걷고, 점잖게 말하고, 날카롭게 보고, 삐딱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청년들에게 가르쳤다.’ 그가 1993년에 쓴 책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에 나오는 문장이다. 밑줄을 죽 긋고 한참을 음미했다. 오죽하면 음악평론가 이무영이 이 책을 읽고 나는 팝 칼럼니스트로서 임진모 씨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했을까. 임진모는 이제 한국의 대중음악평론가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이름이 됐다. 걸출한 입담을 동원할 때도 음악 내면까지 파고드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몇 차례 관찰해 본 바로는 술이 한참 들어간 뒤에도 그의 발음은 또렷하고 흔들림이 없다. 여기에는 평생에 걸친 노력이 뒷받침되고 있다. 그는 방송과 강연을 많이 한다. ‘말하기의 신뢰감과 개성, 목소리의 두께와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열정을 쏟는 이유다. 언제나 아침에 일어난 직후 10분이나 15분 정도 책을 소리 내 읽는다.

지난 73일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격의 없고 푸근한 웃음은 영락없이 이웃집 아저씨다. 그렇지만 엉뚱한 질문을 해도 답은 속사포처럼 빠르게 돌아온다. 베이비붐 세대, 용돈 문화 등 익숙한 문제를 일그러진 경제의 발로등의 낯선 해석과 뒤섞기도 했지만, 논리에 빈틈은 없었다. 뜻밖에도 그는 내 인생의 키워드는 결핍이라고 말했다. 소년 시절 차만 타면 멀미를 하고 말까지 더듬었다. 춥고 외로울 때는 라디오에 귀 기울이며, 혼자 방 안의 혁명가를 꿈꿨다. 대중음악과 다른 학문 영역과의 철학적 통섭을 시도하는 그의 광폭 비평에서 소년이 꿈꾼 혁명이 발화(發火)하고 있다.

임진모는 지난해 가을 , 경제를 노래하다’(아트북스)를 내놨다. 팝 음악과 시대를 관통한 경제 현실의 연관성을 파고들었다. 감성적 음악과 논리적 경제를 교직시킨 인문학서다. 대중음악경제사에 도전한 이 분야의 기념비적 책이기도 하다. 흑인 음악의 미 대륙 전파 등 팝 음악 태동기 부분이 비어있는 점은 아쉽다. 임진모는 음악 태동기 부분을 포함해 디아스포라에 의한 대중음악의 세계 이동, 이산(離散) 등을 깊이 있게 바라보면서 디아스포라와 대중음악을 주제로 하는 새 책을 쓸 계획이라고 했다. 임진모가 쓴 책이 많지만, 이번 인터뷰에서는 , 경제를 노래하다를 주제로 대중음악과 사회에 대한 담론들을 빠르게 훑어나갔다.

 

 

음악은 시대와 경제의 산물

 

-1950년대 말 영국의 경기침체와 징병제 해제가 아니었으면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같은 영국의 전설적 뮤지션이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특이합니다.

음악이 음악만의 것인가, 사회적인 것인가는 첨예한 논쟁 주제인데요, 내 생각에 시대에 따라 음악이 나오기 때문에 가치 상대성이 적용된다고 봐요. 대중음악이란 특정 사회의 산물이고 그 사회 사람들의 정서가 이입되죠. 그 시대의 삶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경제입니다. 비틀스도 리버풀 출신의 찢어지게 가난한 노동계급 후손에 일자리도 없고 군대도 받아주지 않으니 로큰롤이 운명의 행선지가 된 것입니다. 비틀스가 대단했던 것은 한 나라의 국가경제 측면에서 언급됐다는 점입니다. 대중음악의 파괴력이 사회경제적 파급력 형성에 기여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요. 이는 케이팝을 설명하는 이론적 바탕이 될 수 있어요. 상류층이 대중음악 소비를 시작하게 된 것도 비틀스가 이룬 역사적 공적입니다. 비틀스 이전에는 대중음악이 한마디로 유행가고 소비적이었죠. 비틀스의 가사는 3분짜리 유행가에서 벗어났고, 대중음악이 인문·사회학적 도구로 승격하는 계기가 된 거죠. ”

 

- 1950년대 초반 60억 달러이던 아이들 용돈이 1963105억 달러로 수직상승했고, 이것이 로큰롤 음악 대량 소비의 기반이 됐다고 책에서 분석하셨지요.

제가 이 책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와 용돈문화, 미국의 농민 경제와 팝과의 관계를 다룰 수 있었다는 점은 자랑스럽습니다. 1985년 선풍적 인기를 누린 존 멜렌캠프의 노래 허수아비가 농민의 아픈 현실을 노래했지요. 경제 성장의 빛을 대변하는 님과 함께를 부른 남진에게 밀렸던 나훈아가 훗날 더 큰 전설로 비상한 것은 막연한 꿈이 아니라 물레방아 도는데등 이농의 아픔이라는 공감지수가 높은 테마에 집중해 가슴에 오래 남았다는 책 내용을 인상 깊게 읽었다는 분들이 많더군요. 용돈 문화에 대해선 예컨대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그대의 테디 베어가 될게요라는 노래는 10대의 호주머니를 의도적으로 겨냥했어요. 우리 케이팝도 그렇고 외국의 힙합 문화도 그렇지만 10대는 감각적으로 소비하는 세대지요. 20대는 비판적으로, 30대는 긍정적으로 대중음악을 수용하는 시대입니다. 10대는 문화적으로 민감하기도 하고 어딘가 비어있는 세대이므로 소리를 통해 많은 것을 채우려고 하잖아요. ‘용돈 문화 권력이 이뤄진 배경입니다. 한국도 10대들이 음악 소비의 주력 세대입니다. 하지만 10대 음악이라고 해도 노랫말에 대해서는 교양적 가치를 좀 더 부여해야 할 거에요. 외국인들이 한국 노래를 좋아하다가도 한국말 해석하다 이게 뭐야. 장난이잖아라고 비웃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지금은 음악생산자들이 일방통행으로 10대 감각으로, 장사로만 만들려는 생각에 단단히 포박돼 있어서 정서의 균형을 이룰 수 없는 세상이 됐어요.”

 

-책에서 1970년대 디스코 붐을 경제적 시각으로 보셨는데, 기존 통념과는 반대되는 결론을 내리셨더군요.

와우! 굉장히 해석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었어요. 인문학에만 젖은 사람은 이글스나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그늘진 곳을 바라보는 쪽을 주시하면서, 디스코는 소비와 쾌락의 정점이라고 지적했잖아요. 심지어 이 시대 음악이 매음글이 돼 버리고 있다. 통조림화된 음악이 생산되고 있다면서 디스코를 쓰레기로 봤거든요. 그걸 나는 쓰레기가 아니라고 봤어요. 미국 경기가 나쁜데, 디스코 전성기에 잘나간 그룹 쉭(Chic)좋은 시절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봄날이 다시 왔어라며 옛날 노래 가사까지 끌어왔어요. 나는 이것을 즐거운 회의주의라고 규정했습니다. 대중음악이 갖고 있는 특유의, 시대에 대한 조롱적 반영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문에 망했고, 미국경제가 곤두박질친다는 데,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 흑인들이 뭘 잘못했는데..’, ‘우린 좋아, 우린 그냥 즐길게.’ 이런 태도가 역설적으로 그 시대에 대한 뼈아픈 비판이라는 걸 아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어떤 부분에 대해 직격탄으로 가는 게 아니라, 반대로 가는 것도 시대에 대한 비판적 표현이고, 시대에 대한 개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너무 일찍 복고의 맛에 길들여진 청년들

 

-‘피로사회라는 책이 큰 인기가 될 정도고, 특히 청년들이 힘든 시절을 견디고 있지 않습니까.

“1960년대는 한마디로 베이비붐 세대의 저항시대였습니다. 10대가 소비하고 20대가 바로 잡는 그런 개념으로 이후 60년을 쌓아왔습니다. 지금은 그 때 이래 최초로 대중음악이 청춘정서를 포기한 세대라고 봅니다. 사실 청춘의 정서가 대변되지 않는 한 대중음악은 끝이라고 보거든요. 주류가 아닌 인디 음악도 악기가 다르고, 포크적이고 조금 마니아적인 것을 빼면 사실 주류 음악과 별 차이가 없어요. 지향하는 것을 보면 전부 사랑 얘기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쓰라린 청춘들의 아픔을 다룬 얘기가 없다는 겁니다. 이 정부 들어 노인들도 고통 받지만, 최근 들어 청춘영화가 거의 나오지 않고 전부 복고영화에다 기성세대 감수성과 소비에 기대는 영화들만 판을 치고 있어요. 좋은 영화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쎄시봉’ ‘국제시장등이 다 옛날 감성에 의존한 것들이잖아요. 청년들은 요즘 것을 봐야 하는데 벌써 30대가 20대 때 들었던 음악을 그리워합니다. 우리 사회가 청춘다움을 다 앗아가 버렸어요.”

임진모는 미국은 영 제너레이션과 소통한 유일한 국가이며, 그래서 미국은 그 대중음악으로 세계적 선두에 섰다고 말한다. 후일 중국이 아무리 경제력으로 앞서더라도 미국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목소리의 톤이 강해졌다. “밥 딜런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깊은 차원의 사회 변화를 노래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대에 미국 청년들이 난 루저야, 왜 날 죽이지 그래라며 저항 의식을 표출했는데, 한국 청년들은 복고를 찾고 있다니...” 30대가 벌써부터 복고 가요 프로그램인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 열광하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임진모는 대중음악 키워드가 포워드(전진)가 아니라 백워드(후퇴)가 됐고, 프로그레시브(진보)가 아니고 레트러-그레시브(퇴보)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도 외환위기 때처럼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왜 사회성이 강한 음악은 실종됐을까요.

 전 세계의 젊음이 지쳐있다는 것은 명백한 것 같아요. 고단해요. 사회문제가 자신에게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아요. 얼마 벌어서 집 세를 얼마 내느냐가 중요한 거죠. 청년들이 시스템에 단단히 묶여 취업이 최대 이데올로기가 돼버린 세상입니다. 순도 높은 저항적 음악이나 정체성을 담은 음악이 귀에 들어올 리 없지요. 음악을 들을 때의 설렘과 감동이랄까 하는 걸 잃어버렸어요. 힙합도 원래는 흑인 거리에서 만든 위대한 정신과 저항의 표현인데, 이젠 산업화·상업화하면서 프로듀서의 장난이나 돈벌이 수단이 됐어요. 지금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레이디 가가도 시대의 리더는 아니라고 봐요. 내 생각에 음악이 집합 의식을 견인했던 마지막은 밴드 너바나(Nirvana) 같아요. 그런지(Grunge·얼터너티브 록의 한 음악장르) 세대가 마지막인 셈입니다.”

 

-음악의 유통주기도 짧아진 것 아닌가요.

청년들이 표현하고 발열을 해야 하는데 대중가요의 사회성은 점점 떨어지고 산업적 성격만 부각되고 있죠. 지난해 나온 서태지의 소격동도 반나절 1위에 그쳤어요. 지금은 대중가요의 극소비화가 진전되면서 음악은 단발 소비를 추종하는 노예가 됐어요. 음악이 유통기간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안타까워요. 모든 게 음원화 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음악 유통에 따른 소득은 음악가에게 가장 많이 가야합니다. 그게 공유경제지요. 보상이 없는데 누가 음악을 하겠습니까. 우리 사회엔 예술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면서 소비한다는 의식이 확립돼 있지 않아요. 뮤지션들이 피땀 흘려 만든 음악을 어떻게 하면 공짜로 듣느냐에만 신경을 쓰는 세태입니다. 앞으론 직접 민주주의 활성화와 같은 맥락에서 버스킹(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공연료를 받으며 연주하는 것)도 활성화돼야 합니다. ”

 

-대중음악계에서는 표절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왜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요.

대중음악의 비평적 전통이 단절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음악 자체의 무게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후퇴했어요. 이전에는 존 레논이나 밥 딜런, 밥 말리가 있었지요. 지금은 그와 같은 아티스트도 없고, 쾌락평등주의 풍조 속에서 음악은 이제 사적인 쾌락 도구로 바뀌었어요. 힙합, 전자음악, 리듬 앤 블루스도 다 그렇게 됐잖아요. 대중음악 이외에 젊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게 많아졌어요. 게임과 스마트 폰이 그렇고 영화는 말할 것도 없지요. 음악의 처지가 곤궁해졌습니다. 뭔가 살림이 되고 그래야 비평이 가해지고, 음악 산업의 덩치가 커져야 질적으로 밀당(밀고 당기기)이 되지요. 조그마한 구멍가게 돼 버려, 비평적으로 얘기할 건덕지가 없게 됐다는 점에서 무척 아쉽죠. 우리가 음악을 들었을 때는 모든 스타들이 다 가수였어요. 지금도 가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리더라는 개념에서의 가수는 사라지지 않았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신해철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워요.”

 

-이런 때일수록 인문학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문사철의 정신세계는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인문학 바람이 분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이것 역시 또 하나의 유행으로, 안타깝게도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신해철의 말을 빌리면 천민적 개떼 근성으로 보입니다. ‘나는 가수다가 뜨니까 온통 오디션화, 복고바람이 부니까 모두 복고, ‘먹방이 유행하니까 다 먹방’. 인문학 바람도 그런 맥락에 닿아있는 것 같아서 뒷맛이 씁쓸하죠. 찬찬히 자기를 보면서 유행과는 좀 떨어져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사람이 부족해요. 미련하게 돈을 모아 좋은 책을 사고 음반을 모으는 곰탱이들이 없는 게 우리 사회의 비극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글쓰기 문화가 퇴조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까요.

글쓰기로 자기정화나 자기성찰을 할 수 있고, 나아가 글쓰기는 사회 정돈의 최고 방법이죠. 사회적 방파제이며 해독제 같은 겁니다. 글쓰기는 책 읽기를 전제하죠. 그만큼 책을 안 읽고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감각적으로 얕게 변했습니다. 얼굴을 팔면서 자기 띄우기로 존재감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은 천해 보여요. 한발 뒤로 물러서 반성적 ·성찰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풍토를 회복해야 합니다. 위험한 표현이지만, 제가 몰락한 사대부를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문화 자본의 최고는 글쓰기에서 나옵니다. 어느 직종에 종사하든 글을 잘 쓰면 사회가 더욱 깊이를 갖게 되지요. 박찬일 셰프는 글을 잘 쓰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지 않나요. 이것이 바로 프로슈머(소비자가 생산자를 겸함)사회’, ‘품격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봐요.”

 

기자 생활 덕분에 특이한 책 소재 발굴

 

-과거에 경향신문과 내외경제신문 등에서 기자로 일하며 대중음악 기사를 쓰셨는데, 기자생활이 이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됐나요.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기자 생활의 미덕이죠. 팝과 경제의 융합은 기본적으로 미디어적 화제에 바탕을 둔 접근입니다. 기자가 아니었으면 이런 소재를 건져내지 못했을 것이고 단숨에 쓸 수도 없었을 거예요. 아이디어 포착이라든가 그것을 책으로 연결한 것도 저널리즘 세례를 받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생활 때 배워 글 쓰는 속도와 민첩성을 갖게 됐고, 많은 양의 원고를 써본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기자 출신은 강한 집중력을 갖고, 좀 더 빨리 쓰고, 더 많이 쓸 수 있습니다. 소설가나 시인들의 집중력과는 또 다른 차원이죠. 만약 이 책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그것 또한 기자 출신이라는 데서 나온 약점이라고 봐요. 깊이 들어가는 것보다 늘 빠른 일 처리가 중요하잖아요. 기자들의 글은 무사의 칼이상으로 굉장히 큰 무기입니다. 만약 언론인을 그만두고 사회에 나가게 될 경우에도 하나의 비밀병기로 스페셜한 자기 분야의 글쓰기를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기사를 쓰면서 닦은 소양과 이력을 활용할 수 있는 미개척 분야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실력 위에 신념 있고, 신념 위에 체력이 있다체력도 재능이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하는 것이라는 철학이다. 임진모가 본격적인 대중음악비평이 중심이 된 음악웹진 이즘(IZM)15년째 운영해온 것도 이런 자세와 끈기의 결실일 것이다.

 

 

예진수 문화일보 논설위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