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토론회는 뉴스의 인물을 초청하여 깊이 있고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토론회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도 관훈토론회에 초청되었을
때의 느낌을 “한편 인정받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매서운 시험관들 앞에서
구두시험을 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뉴스의 인물을 초청하여 성역 없고 깊이 있는 토론을 하기 때문에 토론회
내용은 주요 뉴스로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관훈토론회는 토론
불모지였던 한국에 토론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관훈클럽은 창립 때부터 토론회와 연구모임, 강연회 등을 많이 열었습니다. 그러다 1977년 뉴스의 인물을 초청하여 지정 토론자가
질문하는 오늘과 같은 토론회를 시작했습니다. 관훈토론회는 1970~80년대는 연 3~5회 열렸습니다. 그 후에는 보통 연 6~8회
개최됐습니다. 가장 많았을 때는 1988년으로 14회였습니다.
관훈토론회는 1980년 ‘서울의 봄’ 때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등 이른바 ‘3김’을 차례로 초청하며 국민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1987년 대통령선거 때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노태우 등 ‘1노 3김’ 대통령후보들의 관훈토론회가 TV를 통해 방영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후 대통령 선거 때마다 주요 대통령 후보는 거의 모두 관훈토론회에 나왔습니다. 대통령 후보 초청 관훈토론회는
대통령후보를 철저하게 검증하는 중요한 통과의례로 정착됐습니다.
관훈토론회에는 대통령후보를 비롯해 추기경, 국회의장, 국무총리, 장관, 감사원장, 정당 대표, 정치인, 서울시장 및 시장 후보, 경제 문화
종교 체육계 인사, 외국 대사와 외국 언론인, 한미연합군사령관 등 다양한 분야의 저명인사들이 초청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