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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상 선생 10주기 추념사-김진현

작성일 :
2024-02-02
조회수 :
598

박권상 선생 10주기 추념사(2024.2.2.)

정신영기금회관

 


김진현

전 동아일보 논설주간·전 문화일보 회장·전 과학기술처장관

관훈클럽 15대 총무관훈클럽정신영기금 5대 이사장

 

 박권상 선배님리버럴리스트 큰 선배님.

 우리들 곁을 떠나신지 10년이 되었습니다. 10년 전 이승의 고생을 벗고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기를 빌었던 저의 후배들로서 10년 추모의 자리에 서니 새삼 그리고 더욱 박 선배의 Liberalist로서의 이상과 그리고 현생에서 부닥친 치열했던 삶을 그리게 됩니다특히 박 선배에 이끌려 관훈클럽 총무와 니만 펠로가 되고동아일보사에서까지 언론계 대부분 박 선배 뒤를 따랐던 저로서는 그러합니다.

 

 박 선배님은 언론의 가장 낮은 자리 일선기자에서부터 편집국장논설주간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언론기관 KBS 최고 CEO까지 이른 현실의 언론인이었고따라서 각박하고 번다한 언론 현실을 뚫고 가야 하는 현실 행동자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그리고 당대 대한민국 최고 논객이었으며 이론과 행동에서 가장 앞장선 이상주의자였습니다제가 1967년 31살의 가장 꼬맹이로 동아일보 논설실에 갔을 때 천관우주필홍승면선배서울대 황산덕고려대 오병헌교수소설가 김성한 씨 등 쟁쟁한 명사들이 포진 했었습니다그러나 매일 아침 논설회의에서나 회의 끝난 뒤 논설실 객담에서나 좌중을 휘어잡는 이는 박 선배였습니다독보적이었습니다.

 

 그런 탁월한 리더쉽 능력에다 일찍 미국 연수와 학구적인 이상주의가 배합하며 관훈클럽 창립신문의 날 제정한국언론의 국제화독재정권의 억압과 탄압에 맞서 일관 지속된 언론 자유수호에 앞장선 선구적 리버럴리스트였습니다박선배가 선 땅의 현실이 요구하는 일상의 현재적 요구와 박 선배의 리버럴리스트로서의 이상주의는 도리없이 박선배의 생애를 치열하게 만들었습니다.

 

 박 선배님과 6살 아래인 저를 포함한 다생(多生세대인 우리 세대가 한국 바탕에서 리버럴리스트로 산다는 것은 여유 부릴 수 없는 치열한 삶일 수밖에 없었습니다우리 모두는 니혼 또는 닛뽄이라는 일본제국 아래 국민학교중학교 다니고이어서 미군정이라는 USA 통치하에 3년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만 만 2년도 못가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에서 3개월그리고 대한민국- 4개의 국가체제한문 일어(가타카나한글 영어까지 네 문자를 익히며 사는 다언어 다문자 다생세대였습니다치열함과 절실함의 삶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그 바탕 위에 리버럴리스트 이상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습니다그러나 헛되지 않았습니다조선일보 송의달 국장의 저서 <아웃포머의 힘>이 명시했듯이 세계적 언론인을 꼽는데 한국에서는 단 한 사람 박권상 선배를 대표적 세계적 수준의 인물로 꼽았습니다조선일보에도 선우휘최석채 씨같은 명 언론인이 있었습니다.

 

 지난 1월 26일 마석묘지에서 일민 김상만 회장 30주기 추념식이 있었습니다박 선배는 그 엄혹한 시절 일민과 동아일보를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혼신의 정열을 바치셨습니까옆에서 지켜보고 또 나름 참여했던 저로서도 현실에서는 끝내 좌절로 돌아오고박 선배나 저나 동아에서 같이 쫓겨나 동아에서 이루지 못한 꿈선배님 꿈을 회상하며 오래오래 일민 묘 앞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박 선배님은 Liberalist라 영어로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자유주의자 진보개혁주의자라는 뜻이 같이 담긴 이 말을 지금 이 땅에서 정확히 전달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지금 한국에서는 가짜 자유주의자가짜 진보좌파가 지배적이어서 인류보편윤리로서의 휴머니즘의 진보와 자유시민 민주정치 시장자유 원칙을 지지하는 두 가지 의미가 겹친 Liberalist는 우리말로 옮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이상주의는 필경 진보적일 수밖에 없고 언론의 이상을 쫓는 자는 자유주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박 선배가 얼마나 확실한 Liberalist인가를 증언코자합니다. 2000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으로 대한민국 신문·방송사장단이 방문했을 때박 선배께서 아주 공개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북한 당국자에게 나치나 KGB 같은 언론공작을 호통치셨습니다북한 유일한 정본(正本신문인 노동신문 지방면에는예를 들면 남한 경상북도 대구시 어느 동 김 아무개가 김일성의 뭣에 감격하며 무슨 모임을 했다거나전라남도 순천시 어느 동 장 아무개가 김정일 말씀을 따다 무슨 찬양을 했다는 등의 보도가 매일같이 세 꼭지씩 나왔습니다박 선배는 북한의 우리 안내책임자(얼마 후 남북대화 책임자가 되었다)에게 이 놈아 이런 조작기사를 우리 남한 언론 대표들이 와있는 동안만이라도 내지 말아야지이게 무슨 짓이냐고 대노했습니다이틀인가 안 나오더니 사흘째부터 또 나왔습니다아마 이런 일로 해서 박 선배는 끝내 남북언론인 공동합의문(2000.08.11.)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또 KBS 사장 시절 국방 장관에게서 직접 들었다며 남한에 북한 파견 간첩공작원이 3만명 있다며 걱정하던 말씀이 생생합니다.

 

 박 선배님지금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최대 국난에 처해있습니다가히 내전테러리즘이 횡행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그러면서 또 한편에선 대한민국 시민의 개인 재능요소(Indivisual Talent Element)가 한류로 나타나 단군 이래 처음으로 대한민국적인 것이 세계를 덮고 있습니다극단의 성공극단의 실패극단의 대전환이라는 3개의 절정을 맞고 있습니다.

 

 박 선배님은 1948년 탄생한 대한민국 체제에서 66년의 생을 거치셨고저는 76년의 생을 거치고 있습니다과연 24년 뒤 2048건국 100년에 대한민국은 Liberalist가 주류되는 평화 통일인류 보편의 지구촌 중심국가로의 큰길을 갈 것인지, 100년을 못 견디고 파멸의 길로 끝낼것인지대만민국이 미래 중심의 큰길로 가려면 이제 언론계에 제2의 박권상3의 박권상이 속출해야만 합니다.

 

 하늘에 계신 박권상 선배님오늘의 대한민국을 내려다보시면 아마 편히 쉬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이승의 나라 걱정 야단치시느라 여전히 치열하실 것 같습니다동아일보에서 KBS에서 제2, 3의 박권상이 나오고 박권상 Model이 한국언론의 자화상으로 정착되기를 다짐하자는 결의를 박 선배님께 바치며 추모사를 닫겠습니다.

 

 박 선배님의 이상주의 리버럴리스트 생애를 지켜주시느라 고생하신 사모님과 박 선배의 무게를 의식무의식으로 체험하며 자라 늠름하게 성공한 자녀들에게 이승에서 다 못 주신 사랑을 하늘에서 듬뿍내려 주소서.

부디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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